군주론

저는 이 글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자신들이 다루는 주제를 묘사하고 꾸미기 위해 과장된 구절이나 고상하고 화려한 단어를 사용하고 다른 수식이나 불필요한 기교를 사용하는 장식적이고 고상한 문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글은 오직 다양한 사례와 진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에만 돋보이고 존중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생 군주는 제아무리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도, 새로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거주민들의 호의(favore, goodwill)가 항상 필요합니다.

사람을 다룰 때에는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다정하게 대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 뭉개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쉽게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해를 주어야 한다면, 복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예 확실히 주어야 합니다.

질병은 초기에는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치료하기는 쉬운데 반해서, 초기에 발견해서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단은 쉽지만 치료는 어려워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안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문제는 일찍 인지하면 신속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통치자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국가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어떤 해결책도 소용이 없습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몰고 오기 때문에 이익을 가져오는 만큼 해악이 따라오기도 하고, 해악을 가져오는 만큼 이익을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연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화근이 자라는 것을 허용해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절대 실패하지 않을 일반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강력해지도록 도움을 준 자는 자멸을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항상 훌륭한 선인들이 행했던 방법을 따르거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모방하려고 애씁니다. 비록 그들의 역량에 필적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업적을 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노련한 궁수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목표물을 향해 활을 쏘는 요령과 같은 것입니다.

비난은 남이 듣게 하라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 우호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것, 무력이나 속임수로 정복하는 것, 백성들로부터 사랑받는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군대로부터 복종과 존경을 받는 것, 당신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무력화시키거나 제거하는 것, 옛 제도를 새 제도로 개혁하는 것, 잔인하면서 친절하고 관대하면서 대범한 것, 불충한 군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는 것, 그리고 주변국 왕들과 동맹을 맺어 그들이 기꺼이 도움을 베풀어주되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게 만드는 것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자신이 과거에 입혔던 피해를 잊도록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입니다.

공작은 자신이 피해를 준 적이 있거나 교황이 되었을 때 자신을 두려워할 만한 추기경이 선출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증오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악행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잔인한 조치들이 ‘잘못’ 이루어진 경우란, 처음에는 드물게 실행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빈도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탈취한 정복자는 그가 행해야만 하는 가해 행위들에 대해서 결정하되, 모든 가해 행위는 단번에 실행하고 매일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해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그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가해 행위는 모두 단번에 시행되어야 하며 그래야 그 정도를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이나 분노를 작게 일으킵니다. 반면 은혜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을 때 더 큰 고마움을 느끼기 마련이어서, 인민은 자신들이 지지했던 군주에게보다 더 깊은 호의를 보일 것입니다.

현명한 군주라면 언제든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자신과 정부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군주가 군무(軍務)보다 개인의 안락한 삶에 더 몰두할 때 권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군주가 권력을 잃는 주된 이유는 군무를 게을리한 탓이며,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주된 이유는 군무에 능통한 덕분입니다.

요컨대 다른 그 어떤 실책들보다도 군무에 정통하지 않은 군주는 자신의 병사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할 것이며 군주도 그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군주는 항상 군무에 관심을 집중하고, 전시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실천하는 두 가지 방법이 훈련과 연구입니다.

전문 지식을 결여한 군주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군주는 이러한 지식들을 전쟁에 유리한 방법으로 활용함으로써 적을 놀라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적을 추적하고, 적절한 주둔지를 결정하고,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적을 향해 진격하고, 전투를 준비하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요새화된 도시들을 포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도 언제나 전쟁 수행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는 부하들과 같이 다니면서 자신의 군대가 처할 수 있는 모든 우발적인 상황을 그들에게 제시하고 의견을 들었으며,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춘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찰과 토론 덕분에, 그는 전시에 자기 부대를 이끌고 출전했을 때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예상 밖의 상황과 부딪치는 상황이 결코 없었습니다.

지적인 훈련을 위해서 역사서를 읽어야 합니다.

실패를 피하고 성공을 본받기 위해 그들이 거둔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서 모방해야 합니다.

현명한 군주라면 언제나 이러한 규범들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며, 평화로운 시기라고 해서 결코 나태해져서는 안 됩니다.

근면한 활동을 통해서 부지런히 자신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역경의 시기에 처할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운명이 변하더라도 그는 그 변화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주가 자신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상황에 따라 선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서, 필요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미덕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실행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군주의 관대함 때문에 대다수가 피해를 입고 극소수만 이익을 얻으니까, 군주는 사소한 난관에도 쉽게 흔들리게 되고 처음 맞닥뜨리는 위험이 중대한 시련이 됩니다. 군주가 이 점을 깨닫고 자신의 처신을 바꾸고자 하면, 그는 즉시 인색하다는 악평을 듣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관대하게 행동하는 동시에 관대하다는 평판까지 듣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에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군주의 인색함 때문에 어떠한 적의 공격도 막아낼 준비가 되어 있고 백성에게 특별세를 부과할 필요도 없이 재정이 충분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 궁극적으로 그 군주는 관대하다는 명성을 더 크게 얻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재산을 보존하게 된 대다수 백성들에게 관대하다는 평판을 듣고, 군주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한 극소수의 사람들로부터만 인색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군주는 백성의 재산을 빼앗지 않고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기 위해서, 가난해지거나 경멸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강탈하며 탐욕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야만 합니다. 인색함이야말로 통치를 위해 허용된 악덕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미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면 관대함은 지극히 해롭고, 군주가 되고자 하는 과정에 있다면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군주는 백성과 자신의 재산을 사용할 때는 아껴야 하고, 타인의 재산을 사용할 때는 가급적 씀씀이를 넉넉하게 해서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타인의 재산을 낭비한다고 해서 결코 군주의 평판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군주의 평판이 드높아집니다. 군주에게 해가 되는 경우는 오로지 군주 자신의 재산을 낭비하는 경우입니다.

군주는 그 무엇보다도 경멸당하고 미움받는 일을 경계해야 하는데, 관대함은 군주를 이 두 가지 길로 이끕니다.

군주는 백성의 결속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충성을 바치도록 할 수만 있다면 잔인하다는 비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나친 자비로움으로 혼란을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의 몇 명을 시범적으로 가혹하게 처벌해서 질서를 잡는 군주가 더 자비롭다고 하겠습니다. 지나친 자비로움은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데, 군주가 집행한 가혹한 조치들은 특정한 몇몇 개인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법만으로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힘에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군주는 모름지기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고루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군주는 앞서 언급했던 모든 성품을 실제로 다 갖출 필요는 없지만, 마치 모두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저는 군주가 그러한 성품을 모두 갖추고 끊임없이 실천하는 것은 해롭고, 그것들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롭다고까지 감히 장담하겠습니다.

군주가 경멸받는 경우는 변덕이 심하고 경박하며 여성적이고 우유부단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입니다. 군주는 암초를 피하듯 경멸받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군주는 위엄, 용맹함, 진지함, 강건함을 과시해야 하며, 백성들의 사적인 분쟁에 대해 자신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평판을 유지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기만의 술책을 꾸밀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군주는 측근의 충성심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그를 우대하고 부유하게 만들며, 그를 가까이 두고 친숙하게 대함으로써 명예와 책임을 나누는 등 그를 잘 보살펴야 합니다.

국정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자신과 자신의 일을 우선시해서는 안 되며 항상 군주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이 모시는 군주와 관련이 없는 일에는 절대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군주의 일보다 자신의 일에 더 마음을 쓰고 모든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함이라면, 그는 결코 좋은 측근이 될 수 없고 군주는 그를 절대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그 능력에 따라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터득하는 자, 타인이 이해한 것을 듣고 깨우치는 자, 그리고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전혀 그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별하여 오직 그들에게만 진실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주어야 합니다.

군주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되고, 한번 정한 목표는 철저하게 추구해야 하며,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확신을 보여야 합니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와 활동에 대해서 쉽게 만족하고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에 자기기만에 쉽게 빠집니다. 이때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군주는 항상 조언을 구해야 하지만 남이 원할 때가 아닌 자신이 원할 때 들어야 합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조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군주는 그 이야기를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고 자신이 제안한 사안에 대한 솔직한 조언들에 대해서는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누군가 자신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노여움을 표시해야 합니다.

오직 군주가 요구할 때에만 이야기해야 하고, 요구하지 않은 경우에는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군주가 아첨에 빠져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진실을 듣더라도 결코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하든 관계없이 훌륭한 조언이란 군주의 현명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훌륭한 조언에 의해 군주의 현명함이 비롯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란 과거의 일보다 현재의 일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아서, 만약 현재 자신들의 일이 잘 풀려가고 있다고 느끼면 그냥 현재에 만족하고 다른 변화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자신들이 다스리던 국가를 잃게 된 우리 시대의 군주들은 자신의 운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탓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화로운 시절에 사태가 변할 것임을 전혀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날씨가 좋을 때 폭풍이 올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공통된 약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상황이 바뀌어 역경에 처하면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방어할 생각은 않고 오직 도망갈 궁리만 했습니다.

신중한 두 사람 중에서도 한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지만 다른 사람은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이한 모든 결과들은 그들이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행동했는가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저는 운명의 여신을 격렬하게 넘실대는 험난한 강에 비유합니다.

운명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비해 인간은 자신의 방식으로만 행동하려는듯 유연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운명과 인간의 방법이 조화를 이루면 성공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강물의 특성이 그러해도, 사람들은 평온한 시기에 제방과 둑을 쌓아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명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자신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드러내며, 운명을 막기 위한 제방이나 둑이 마련되지 않은 곳에 집중해서 덮칩니다.

각각의 개인들은 다양한 행동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하고 반대로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맞추어 조화롭게 이끌지 못한 사람은 실패합니다.

저는 신중한 행동보다는 과감한 행동이 더 낫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자신이 처한 운명과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임기응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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